𝙇𝘼𝙓 𝙒𝙄𝙆𝙄
최근 변경
최근 토론
임의 문서
도구
최근 변경
딮스마르크 추격전
(편집 요청)
[알림]
문서를 편집할 권한이 없기 때문에 편집 요청으로 이동되었습니다.
편집 권한이 부족합니다. 로그인된 사용자(이)여야 합니다. 해당 문서의
ACL 탭
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닫기
RAW 편집
미리보기
== 배경 == 1983년 당시 [[마베라]]는 랜드해협 전역에서 팽창하는 파시즘의 기세를 저지하는 데 앞장선 사실상 유일한 세력이었다. 추축국 [[웨스타시아]]는 해상과 육상에서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고, 그 결과 동랜드국가들의 균형은 빠르게 무너지고 있었다. 마베라는 이러한 상황을 좌시하지 않고, 해양 강?국으로서의 전통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걸고 웨스타시아의 팽창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델라웨어]]는 당시 [[웨스타시아-델라웨어 불가침 조약]]을 통해 중립을 표방하며 전면전을 피했지만, 웨스타시아와 마베라 사이의 긴장이 높아지자 사실상 웨스타시아의 조력자 역할을 자처했다. 델라웨어의 적극적인 태도는 마베라를 더욱 고립시켰고, 마베라는 홀로 웨스타시아의 파시즘적 팽창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나 마베라는 전통적으로 해양 강국이었기 때문에 고립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수많은 상선들을 이용해 물자와 원료, 군수품들을 본토로 운송하거나 주요 전선으로 배치하고 있었다. 웨스타시아 역시 이러한 마베라의 해상보급선을 잘 알고 있었기에 유보트와 소수의 수상함들을 투입해 통상파괴작전을 수행했으나, 마베라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데에는 실패하고 있었다.[* 유보트의 문제는 할 일은 많은데 배의 수가 적었다는 것이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웨스타시아 해군의 재무장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전쟁이 시작된 것이며, 당시 해전 패러다임이 거함거포주의였기에 웨스타시아 지도부는 소형 잠수함보다 대형 전함 건조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잠수함의 건조비용은 막대했고(유보트 한 척의 가격은 전차 수십 대에 맞먹었다), 숙련된 잠수함 승무원 양성도 어려웠다.] 1983년 3월, 전함 [[럭샤른호르스트급 전함|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급 전함|시후니제나우]]의 통상파괴작전이 무사히 끝났고, 같은 해 5월에는 중순양함 어드미럴 디퍼까지 가담하여 랜드해협에서의 통상파괴작전을 준비했다. 여기에 막 취역한 대형 전함 [[딮스마르크(전함)|딮스마르크]]와 중순양함 '''프린츠 엘데른'''도 포함되었다. 원래 계획은 럭샤른호르스트, 시후니제나우, 딮스마르크, 프린츠 엘데른으로 이루어진 4척이 동시에 출항하여 전대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출격할 경우 마베라 해군이 수송선단을 전함으로 호위하더라도 이를 압도해 수송선단을 전멸시킬 수 있었다. 이는 과거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가 출격했을 때, 호위 전함을 발견하고 공격을 포기한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수상함에 의한 수송선단 공격을 계속 유지하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 그러나 럭샤른호르스트와 시후니제나우는 귀환 후 [[마베라 공군]]의 폭격을 맞거나 기관 수리에 시간이 걸려 예정대로 출격하기 어려워졌다. 웨스타시아 해군은 통상파괴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전력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공격 전대를 출격시키기로 결정했고, 결국 딮스마르크와 프린츠 엘데른을 우선 출격시키게 되었다.
요약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당신은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 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
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
비로그인 상태로 편집합니다.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로 문서 편집을 저장하면, 편집 역사에 본인이 사용하는 IP(127.0.0.1) 주소 전체가 영구히 기록됩니다.
저장
닫기
Liberty
|
the seed